로컬의 신 : 서울을 따라하지 않는다
프롤로그
제주도 독채 펜션 토리코티지와 인천 개항로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강연 요청이 잦다. 강연하는 것은 여전히 쑥스럽다. 과연 내가 강연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내게 질문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강연 요청을 받으며 이것저것 묻고 따져 최소한의 것만 수락했는데, 내가 해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방법을 몰라 헤매는 중이라면서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로컬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거나 지역을 살리고 싶어하는 공무원들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되면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판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왕권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나 부르주아 계층이 무너지고, 산업화 시대가 열렸다. 이후 긴 시간 동안 자본주의 논리로 사회가 작동했는데, 그 시스템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옳다고 믿었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과 중립적 시선이라는 의미의 객관적이라는 말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변화는 아주 가까운 데서 관찰된다. 종종 버라이어티쇼를 보면 시대의 단면이 읽힐 때가 있다. 얼마 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런던 여행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빅벤이나 런던아이 처럼 런던을 대표하는 아이콘 대신 시내 뒷골목을 보여줬다. 출연자는 바버숍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근처 편집숍에서 벨트를 구매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템즈 강변에서 조깅을 했다. 방송국 카메라는 사람들의 욕망을 따라 움직인다.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근위병 교대식과 타워 브릿지를 보기위해 런던에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인 경험을 하며 도시를 즐긴다. 개인의 취향이 여행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놨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설명할 수 없는 건 로컬로 향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로컬에서 자주 마주치며 천천히 가까워진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서울 강남 3구에서 태어나 한 번도 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고, 부모님은 법조인이나 의사 같은 전문직이며, 청년 역시 ‘SKY’ 출신의 엘리트인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저런 스펙을 가진 청년이 왜 로컬에 왔는지 궁금했다. 중년으로 접어든 내 또래는 높은 스펙을 쌓고 청년시절 로컬에서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상황 자체가 낯설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해 이곳까지 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가치가 변한 거라고 밖에, 자본주의의 판이 바뀌는 중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처음 기업 총수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했었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해결하지 못할 게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왜 인천에서 작은 상권 하나 기획한 내게 만남을 요청할까. 그들이 가진 거대한 자본과 인재로도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사회, 판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트렌드를 이끌어 온 것은 20~30대다. 지킬 게 많은 기성 세대는 변화가 두렵지만, 가진 게 없는 20~30대는 변화 속에서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이들이 감각적으로 알아 채고 있다. 성장 과정에서 익힌 본능적인 감각이다. 모르는 것은 두려움이고, 두려움은 종종 공격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MZ 세대를 향한 기성 세대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요즘 애들’이란 말은 내가 20대 때도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였다면, 요즘에는 불안과 질투가 섞여 있는 느낌이다.
판이 바뀌면서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가치 있게 들여다보는 시도가 많아졌다. 로컬도 그 중 하나다. 로컬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로컬로 향하지만, 적응하지 못해 겉돌거나 고생만 하다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태다. 모아둔 자금도, 긍정적 태도도, 본래의 터전도 모두 사라지고 나이만 먹는다. 내게는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보이지만, 타인의 인생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기에 도움을 청하기 전에 말을 보탤 수도 없다.
이 책은 로컬에서 기회를 찾아 비즈니스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매뉴얼이다. 로컬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청년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매뉴얼을 작성했다. 개인의 취향을 살려 라이프스타일을 비즈니스화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로컬이 좋아 삶의 터전으로 삼았지만 그곳에서 회사생활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크게 도움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금을 모아 사업을 하거나 지역 자원을 활용해 사업을 하고자 로컬에서 직장 생활 중이라면 주목해도 좋다.
나는 영국에서부터 제주도, 가평, 부산, 서울, 인천 등 20년 가까이 로컬을 경험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왔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로컬에서 기획하고, 전략을 세우고, 크루를 형성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 마케팅 방법까지 실전 팁을 공유한다.
2023년 11월
이창길
magae.info@gmail.com
@magae_incheon
인천광역시 중구 개항로 94, 3층
주식회사 마계인천 | 대표 이창길
Copyright 2025 MagaeIncheon